호소다 마모루가 만든 극장판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 봤는데 이거 무시무시한 괴작이네요 영화




전성기의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해서 작품 자체는 매우 재밌고 특이하고 잘 만든 영화지만 테마나 묘사적으로는 원작 강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괴작이었다.

원피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란 바로 [동료]인데 그걸 이 영화에선 찢어지기 쉬운, 언제든지 갈라질 수 있는 약한 관계로 묘사함과 동시에 [가족]이야 말로 영구불멸의 진정한 관계라고 그려내고 있다.

분열된 밀짚모자 해적단

이 작품에서 루피의 밀짚모자 해적단 동료들은 오마츠리 남작의 계략에 의해 손쉽게 분해되버리며, 클라이맥스에서 동료를 갈구하는 루피의 모습은 감동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공포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거기다 오마츠리 남작과 이 작품의 실질적인 최종보스인 리리카네이션을 무찌른건 아저씨와 그 가족의 힘이었다.




공포스럽게 연출된 동료를 갈구하는 루피

심지어 오마츠리 남작이 가족의 힘에 패배한 후엔 이미 한참 전에 죽었지만 그에 의해 억지로 살려져 있던 그의 동료들이 나레이션으로 "선장님 우린 괜찮아요 저흴 잊어주세요 대신 다른 동료를 만드는 건 어떤가요?" 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건 결국 해석하자면 [동료라는 건 언제든지 갈아치우는게 가능한 별 것 아닌 관계] 라는 것이다.

가족의힘에 의해 죽게되는 진 최종보스 리리카네이션

즉 감독 호소다 마모루는 이 영화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을 통해 [동료]의 가치를 절대시하는 원작 만화 원피스에 [동료란 것은 정말로 끊을 수 없는 유대로 이어진 것일까? 사실 그런 것 보단 피로 이어진 가족이야 말로 진정한 관계가 아닐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난 딱히 원피스의 열광적인 팬도 아니고 호소다가 말하는 것 역시 그렇게 공감하진 않지만 어쨌든 이 영화가 특이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 탑건 매버릭 리뷰(스포없음) 영화




이 영화는 단순히 탑건의 후속편이 아닌 톰크루즈라는 배우의 영화인생과 그 삶의 자세에 대한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인 매버릭은 완전히 톰크루즈 그 자신으로 누구나 무모하다고, 무리라고 하는 일 (이 영화에선 도그파이트 , 현실에선 맨몸스턴트)에 언제나 기꺼이 도전하는 그의 불멸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톰은 언제나 톰이기에 가능한, 톰 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을 해왔었다. 그리고 그런 무적초인으로 보이는 그에게도 가족이나 친구 관계 같은 인간적인 고민이 있다는 것 역시 표현하고 있는 것 역시 평가받아야 할 점.

그리고 이 영화는 톰의 "고독" 역시 비추고 있는데 어떤 무리한 일이라도 해내는 톰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점점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늙어 사라져버린다 (그 예가 이 영화에선 옛날의 전우였던 아이스맨) 이 영화는 그런 톰이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미션을 받고 탑건의 훈련생들과 함께 지내고 미션을 해결하면서 곤란을 넘어서 고독을 치유해가는 그런 작품이다.

톰은 아무리 그가 하는 짓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미쳤다고 소리를 들어도 그것에 도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진정한 남자이기 때문이고, 톰크루즈이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 서로 다르면서 비슷한 두 사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리뷰>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트레인지와 이번 작품의 악역 완다가 그 발상에 이르는 이유는 다르더라도, 양쪽 다 주위를 컨트롤 하고 싶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 각본의 교묘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차원의 자신을 조종하는 마술은 그 메타포이기도 하다

※이걸 쓰고 있는 사람은 완더비전은 보지 않았음

그러나, 그 서로 다른 컨트롤 욕구가 남녀 각각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투영되고 있는 곳이, 이 영화의 재미있는 부분이며,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인지의 경우 극중에서도 말해지듯이 메스를 타인이 잡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제일 뛰어나다고 확신하고 있고, 자신의 판단이 제일 "이성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태도는 부드럽게 해도 결국 타인의 의사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내 판단이 옳을 것 같다"라며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파트너는 "어차피 나에게는 아무것도 맡겨주지 않겠지" 라고 실망하게 되어 진심으로 그를 신용할 수 없다. 그와 어울리는 것은 "너가 천재라고? 뭔 소리야 소서러 슈프림은 나라고" 라며 스트레인지에 조금도 열등감을 품지 않는 웡 정도입니다 (아이언맨과의 차이는, 저쪽이 자신의 의견이 통하지 않는다면 정치적으로 리더십을 취하러 가는 것에 비해, 이쪽은 「그럼 내 마음대로 하겠어」라며 움직이는 곳일까) 이것은 뭐 전형적인 강압적인 남자친구상입니다.

완다의 경우는 소위 말하는 과보호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타인은 아무리 희생해도 좋고, 그런 자신의 추함은 우리 아이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도록 하며 지키며 키워 간다… 
다른 세계의 행복한 완다 막시모프가 항상 거실과 침실에 있는 모습 밖에 그려지지 않는 것이 시사적이지만, 그녀의 이상적인 세계는 항상 집안에 있습니다. 아이는 항상 집안에 두고 싶고, 집 밖은 아이에게 해롭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상 속 행복한 집"에 아이를 둘러싸기 위해 모든 방해를 제거하는 것이 그녀의 욕망이 됩니다. (이 영화에는 또 하나 「부모를 가진 아이」로서 아메리카가 등장합니다만,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가 다양한 이세계에의 모험이 아무렇지도 않은 터프한 아이로서 그려지는 것은 아이러니네요 )

이 영화는 후자의 완다를 자신의 슬픔에 빠진 나머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르는 괴물로 그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강렬한 모성애와 가정내 규범의식을 "일방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두려운 것」이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무서움도 그리는 것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작중에서 방문하는 2개의 세계에서, 2개의 세계 모두 자신의 에고이즘에 의해 우주를 멸망시키고 있는 다른 우주의 스트레인지의 묘사입니다. 첫 번째 우주에서는 동료를 믿지 않고 비밀리에 어둠의 마술을 이용해 다른 우주와 교신해 타노스에 대한 해결책을 찾은 결과, 우주끼리의 충돌에 의한 우주 붕괴를 일으켰습니다. 두 번째 우주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이 우주의 그는 “자신은 아무리 해도, 어떤 방법으로도 사랑한 사람을 파트너로 얻을 수가 없다”라고 절망하는 나머지, 다른 차원의 자신을 그 절망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죽이고 다니며, 그 때문에 첫 번째 우주 붕괴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분명히 "스트레인지도 완더처럼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악역을 주인공의 거울으로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묘사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절망으로 대량 살육을 저지른다는 또 다른 공통항이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 살육은 그 뿌리를 찾아보면 그의 "자신이 사태를 컨트롤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욕구에서 온 것이고, 이것이 완다가 세상을 자신의 거실처럼 취급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견본과도 같은 각본술이지만 여기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강압적 기질 때문에 차인 남자친구'와 '(능력으로 낳은 상상임신 같은 아이라고는 해도)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비교하면 분명히 후자 쪽이 사태가 심각한 것입니다.

스트레인지는 라스트 씬, 그녀로부터 받은 추억의, 그러나 망가져 시간이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 시계를 수리해 서랍에 두고, 옷차림도 새롭게 해서 거리에 나섭니다. 이것은 매우 알기 쉬운 「과거의 사건을 추억으로 둘 수 있게 된 스트레인지는 심기일전, 그 자신의 시간도 멈춘 그때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메타포입니다. … 하지만, 완다가 같은 입장이라면 거렇게 할 수 없을 거잖아요! 여기에 거울 구조의 무리가 생깁니다.

제가 의심을 품은 것은 거기입니다. 이것은 남녀의 전형적인 성질을 대조적으로 나눠서 약간의 웃음과 함께 슬픔을 유도하는 영화입니다. 그 대조에는 성차별적으로 되지 않도록 밸런스를 취할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남자의 별 거 아닌 상념」과 「여자의 정념의 무시무시함」이 되버려 좀 불공평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의념을 품게하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스트우드 감독의 퍼펙트월드 리뷰 영화













아이에게서 자신을 보는, 아버지와 아들의 신비한 관계

"20세기 타임머신" 을 타고 처지가 비슷한 소년을 자신과 겹쳐보고, 동시에 "나쁜 아버지" 인 자신을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단죄시켰다.

"나쁜 아버지" 를 증오하면서 "부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라며 비난할 수 없는 모순의 연쇄에 종지부를 찍는
앞(미래)으로 나아가는 타임머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 [퍼펙트월드] (완전한 세상)

스토리 자체는 정말로 한 탈옥수와 인질이 된 소년의 도주극이란 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런 뻔한 소재를 이런 명작으로 끌어올리는 이스트우드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작품

중반까지는 탈옥수와 인질소년이 라디오가 틀어진 미래로 가는 20세기 타임머신 (차를 이렇게 부름, 나아가면 앞은 미래고 뒤는 과거니까) 을 타고 점점 유사 부자 관계가 되어가는 모습을 느긋이 즐기면 되고

후반부에서 한 농장의 흑인부부를 만나 그 집에서 머물고 가게 되는 부분은 이스트우드 다운 대단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얻어맞으면서 커 왔기 때문에 아이를 때리는 부모를 증오하는데

그 흑인부부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친절에 감사하며 흑인할머니와 옛날 음악이 담긴 레코드를 틀며 느긋이 춤을 추기도 하지만 흑인할아버지가 손자를 말을 잘 못알아듣는다고 때리며 교육을 시키는 모습을 보고는 그에게 총으로 협박을 하는 부분은 아마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부분은 역시 이스트우드 답게 흑인 할아버지에 의해 주인공의 어린시절 부모에게 얻어맞던 트라우마가 자극되어도 오버스럽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씬 없이도 그가 대단히 분노했다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연출이 수려했고 라스트에서 배에 총을 맞고 나무에 기대서 인질이었던 소년에게 하는 말과 마지막 행동은 어떻게 될지 다 예상이 가는데도 슬픔과 감동을 준다

퍼펙트월드는 다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그의 조국인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에게 있어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는 이상향이나 기회의 땅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격렬히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미국이란 나라와 그 구성원들을 카메라를 통해 그의 독특한 사회관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스트우드 감독의 최신작인 크라이 마초와 어느 정도 공통점을 느끼게 하는 영화기도 했다

(뭔가 90년대에 만들어진 아메리칸 뉴 시네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음)




블루 리플렉션 레이 애니메이션 리뷰 만화애니











"한 사람이 괴로워 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그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손을 뻗어주는 것." 그런 심플하면서도 강한 테마를 2쿨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잔혹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정중히 묘사한 걸작 애니메이션

사람의 "마음" 이라는 애매하면서도 부정확한 것을 사춘기 소녀들의 배틀이나 언어 등을 통한 대화, 커뮤니케이션으로 그것이 무엇이고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대해고 마주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있다.

한 사람이 괴로워 하는 사람 한명을 구해주고 그게 쭉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고통으로 찬 이 세계도 바뀌어지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난 느꼈다

「하지만 난 믿고싶다, 선이란 이름 만이 아니고, 행복은 꿈이 아니라고」
「だが私は信じたい、善とは名ばかりではなく、幸福は夢ではないと」

(만약 이 애니를 볼거라면 최소한 6화까지는 보는걸 추천)
(캐릭터들의 과거나 진실 같은게 정말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잔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6화와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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